경제


‘구리왕 신화’ 절반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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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창희]


차용규

‘구리왕’ 차용규(55)씨는 지난 5월 서울지방국세청에 소명서 한 통을 보냈다. 2006년 매각 차익만 1조원대의 대박을 안긴 구리업체 카작무스 지분 대부분이 사실은 현직 카자흐스탄 고위층의 측근 인사 소유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에게 탈세 혐의로 수천억원의 세금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서울지방국세청은 당시 차씨에 대해 해외탈세 혐의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세간에선 차씨에 대한 추징액만 6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차씨의 소명서를 받아 든 국세청은 사실 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차씨 주장이 상당 부분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는 차씨의 사업 파트너였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3세 블라드미르 김(50) 카작무스 회장도 차씨 지분의 실소유주는 차씨가 아니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것도 한몫했다. 게다가 국세청은 차씨 지분 문제를 깊이 파고들면 외교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도 내렸다. 결국 서울청은 차씨 몫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차씨가 보유했던 카작무스 지분 약 15% 중 진짜 차씨 몫에 대한 탈세 추징액은 약 2000억원이다.

 1일 세무당국에 따르면 2006년 차씨는 카작무스 지분을 팔아 1조원대의 양도 차익을 올렸다. 이때 차씨는 국내 거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국세청은 차씨가 국내에 부동산 등 재산이 있고, 가족과 함께 드나든 사실 등을 감안해 국내 거주자로 판단, 납세의무가 있다고 봤다. 이후 차씨는 홍콩을 근거지 삼아 다양한 투자 활동을 했지만 역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이것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차씨는 2005년 카작무스를 런던에 상장시킨 뒤 주식 명의를 조세 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로 옮겼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외 원천 소득에 대해 비과세하는 영국의 세법 규정을 이용해 차씨가 한국과 영국 어디에도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영국과 조세협정이 체결돼 있어 이중 과세가 안 된다”면서도 “국내 거주자가 양쪽 모두에서 세금을 안 냈을 경우 추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차씨 측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을 떠났고 현지에서 일부 세금을 냈다”며 불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차씨의 탈세가 고의성이 적다고 보고 형사 고발은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개별 조사 건에 대해 일절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원론적으로만 말하면 탈세액의 많고 적음만으로 고발되는 것은 아니고 고의성 여부 등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차씨가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세운 여러 개의 페이퍼 컴퍼니와 부동산 펀드 등을 통해 서울과 제주도 일대에 수천억원대의 부동산에 투자한 내역을 대부분 파악했다. 헤지펀드를 통해 2007년부터 국내 중소형 기업들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에 투자한 정황도 포착했다. 국세청은 이들 투자의 자금 흐름을 추적해 차씨가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에 나설 방침이다.

윤창희 기자

◆카작무스=카자흐스탄의 구리 채광 및 제련업체로 삼성물산이 한때 2대 주주로 위탁경영을 맡았다. 삼성물산 부장이던 차용규씨는 1998년 카작무스 사업부장을 맡은 뒤 2003년 회사를 그만뒀다. 삼성물산은 2004년 이 지분을 카작무스가 지목한 페리파트너스란 투자업체에 판 뒤 사업을 철수했다. 2005년 카작무스가 상장되는 과정에서 페리파트너스의 대표가 차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리값 폭등으로 카작무스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를 넘겼다. 다음해 차씨는 지분을 팔아 1조원대의 차익을 남겼다.

▶윤창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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